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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란 무엇인가
2026년 4월 03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언가를 '느낍니다'.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의 설렘,
중요한 발표 직전의 묵직한 긴장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마주쳤을 때의 반가움.
이 느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해서, 평소에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를 정의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감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몇 가지나 존재하며,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오늘은 감성의 본질을 바라보는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접근법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감성에는 '종류'가 있다>
1960~70년대,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특이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서구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가던 파푸아뉴기니 부족민들을 찾아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친구가 죽었어요.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답을 뉴욕 시민들의 답과 나란히 놓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전혀 달랐지만, 두 집단이 그린 표정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에크만은 이 결과로부터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인간에게는 문화와 인종을 초월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기본 감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그가 정의한 6가지 기본 감성(Basic Emotions)은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입니다.
각각의 감성은 고유한 얼굴 근육 패턴을 가지며, 이 패턴은 어느 나라에서든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행복할 때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 주위 근육이 수축하며, 공포를 느낄 때는 눈이 크게 열리고 입이 벌어집니다. 에크만은 이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수백 가지 단위로 세밀하게 분류한 FACS(Facial Action Coding System, 얼굴 행동 부호화 시스템)를 개발했는데, 이 시스템은 오늘날 감성 AI의 표정 인식 기술에 그대로 활용되고 있죠.
그런데 인간의 감성은 정말 딱 6가지로만 나뉠까요? '질투', '그리움', '뿌듯함'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한국의 '한(恨)'이나 포르투갈의 '사우다지(Saudade)'처럼, 다른 언어로는 번역조차 쉽지 않은 고유한 감성들은요?
<두 번째 답: 감성은 '좌표'로 표현된다>
에크만 모델의 한계를 인식한 심리학자 제임스 러셀(James Russell)은 1980년에 전혀 다른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감성을 종류로 나누는 대신,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2차원 공간 위에 배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두 축의 이름은 Valence(정서가)와 Arousal(각성도)입니다. Valence는 감성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를 나타내는 축입니다. 기쁨은 긍정의 극단에, 슬픔은 부정의 극단에 위치합니다. Arousal은 감성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축입니다. 흥분 상태는 각성도가 높고, 졸음이나 무기력함은 각성도가 낮습니다.
이 두 축을 교차시키면 '감성 지도(Circumplex Model, 원형 모델)'가 완성됩니다. 흥분은 긍정적이면서 각성도가 높은 영역에, 분노는 부정적이면서 각성도가 높은 영역에, 편안함은 긍정적이면서 각성도가 낮은 영역에 자리 잡습니다.
이 모델의 가장 큰 강점은 어떤 감성이든 지도 위의 한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크만 모델로는 담을 수 없었던 미묘한 감성들도 이 좌표계 안에서 모두 위치를 가집니다. '질투'는 부정적이면서 각성도가 높으니 오른쪽 위 어딘가에, '그리움'은 약간 부정적이면서 각성도는 낮으니 오른쪽 아래 어딘가에 놓이겠죠. 감성을 이산적인 '종류'가 아니라 연속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무리>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두 모델 모두 '감성'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뿐이니까요.
에크만 모델은 "지금 이 사람이 어떤 감성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관적으로 답합니다.
Valence-Arousal 모델은 "그 감성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얼마나 강렬한가"라는 질문에 수치로 답하죠.
그래서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두 모델을 혼합하면 '지금 이 사람이 어떤 감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에크만 모델), '그 감성의 강도가 어느 정도이다'라는 수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Valence-Arousal 모델). 두 개의 렌즈로 같은 순간을 동시에 바라보는 셈이죠.
심리학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낸 이 두 모델이, 이후 공학이 개발한 측정 기술과 만나면서 감성 AI라는 기술이 탄생했습니다. 그 측정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Reference]
Ekman, P., & Friesen, W. V. (1971). Constants across cultures in the face and emo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7(2), 124–129. https://doi.org/10.1037/h0030377
Ekman, P., & Friesen, W. V. (1978). Facial action coding system: A technique for the measurement of facial movement. Consulting Psychologists Press.
Russell, J. A. (1980). A circumplex model of affec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9(6), 1161–1178. https://doi.org/10.1037/h007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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